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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 게시물

연합교회 노스욕
2025년 3월 22일
In 묵상
성경말씀 “남을 판가름하지 마세요. 그리하여 여러분이 판가름받지 않도록 하세요. 여러분이 남에게 한 그 판가름으로 여러분이 판가름받을 테니까요. 또 여러분이 남에게 갖다 댄 잣대를 여러분에게도 갖다 대실 테니까요. 왜 그대는 ⁕형제자매의 눈 안에 있는 티끌은 보면서 그대 눈 안에 있는 나무 막대는 알아채지 못합니까? (마태복음 7장 1-3절)  묵상 누군가를 판단하는 것에 대해 주님께서는 명확하게 권고하십니다. 자신의 들보를 보라는 것입니다. 남을 탓하고, 자기 정당성을 내세우지 말고 자신의 핵심과 실체를 보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가 분명히 자각할 때 우리는 이 하나님의 판단을 가늠할 수 있게 됩니다. 사울은 진리를 수호한다고 믿었지만 은총을 받아 눈의 비늘이 벗겨지자 자신이 눈뜬 소경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들에게 은혜를 주시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기회를 주십니다. 악인이라고 해서 악천후에 시달리게만 하지 않으시고, 선인이라고 해서 맑은 하늘만 선사하지 않으십니다. 이 차별 없는 사랑의 눈으로 타인을 바라보십시오. 판단을 멈추십시오. 당신이 판단하고 정죄하려는 그 누군가가 언제 어떻게 그분의 은총을 입을지 알 수 없습니다. 그가 배신을 용서받고 큰 사도가 된 베드로일지 모릅니다. 간음을 용서받고 끝까지 예수님을 따랐던 막달라 마리아일지도 모릅니다. 박해하다 돌아선 사도 바울일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감정과 판단을 바꾸십시오. 먼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십시오. 내 눈에 붙어있는 교만, 우월감, 열등감, 상처, 고정관념 등의 들보를 빼십시오. 우리의 지성에만 의지하는 한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없습니다. 어두운 밤이 찾아와 그분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철저하게 깨달을 때, 그분의 신성이 우리의 교만을 허락하지 않음을 뼈저리게 이해할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만물을 움직이는 진리와 사랑의 길과 존재의 이유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판단하기보다 더 사랑하기 위해 힘쓰고, 그의 행동과 영을 분별하되 사람을 정죄하지 않기 위해 애쓰십시오. 판단하기보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애쓰십시오. 우리의 영혼과 교회와 가정에 자비와 사랑이 넘치게 될 때, 그분이 십자가를 통해 하시고자 했던 구원의 사랑이 흐르게 될 것입니다. 사막교부와 함께하는 묵상 어떤 허물에 대해서 그대의 이웃을 판단하려는 생각이 들면, 먼저 그 사람보다 그대 자신이 죄인임을 생각하라. 그대가 선을 행한다고 평가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믿지 말라. 그러면 그대는 감히 그대의 이웃을 정죄하지 않을 것이다. - 이사야 기도 주님, 남을 판단하기 전에 먼저 저의 내면의 동기와 감정을 알아차리기를 기도합니다. 판단에서 벗어나 당신의 차별 없는 사랑의 눈으로 사람들과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우소서. 눈물은 꽃이 되어 by 양아인 [막달라 마리아의 노래] Produced by 이권희
3월 22일 사순절 묵상 / 판단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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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교회 노스욕
2025년 3월 21일
In 묵상
외로움  성경말씀 모두가 보고서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죄인의 집에 그가 들어갔어! 손님으로 묵으려고 말이야!” 그러나 삭개오는 서서 주님께 말씀드렸다. “보십시오, 저의 재산 절반을, 주님,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또 누군가에게 을러대어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갚아 주겠습니다.”(누가복음 19장 7-8절)  묵상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당시 로마는 황실의 호사와 전쟁으로 인해 부족한 자금을 식민지에 적잖은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충당하려 했습니다. 각 식민지의 세금 총책임자는 이 할당된 세금에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더 많은 세금을 붙여서 부과했고 그 밑으로 내려가면서도 이러한 방식이 계속되어 결과적으로 살인적인 세금이 식민지 사람들에게 부과되었습니다. 삭개오는 그 세금을 거두는 중간 책임자였습니다. 그 역시 다른 세리들처럼 악착같이 돈을 모았습니다. 돈을 모으면 자신이 지닌 외로움이 가셔질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몇몇 사람들이 손가락질했지만 거기에 개의치는 않았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자신에게 손길을 내밀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점차 삭개오는 허전함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돈이 계속 쌓여도 채워지지 않는 공백이 그의 마음에 생겼고 그곳에서 고독함과 외로움, 갈증이 밀려왔습니다. 자신의 모습 그 자체가 아닌 자신의 돈을 보고 모여든 사람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인간관계는 이 공백을 채우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진실한 공동체적 관계가 없으면 늘 외로움이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외로움을 느낄 때 자기 안으로 들어가 갇히거나 밖의 부산한 활동을 통해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문제 해결은 자기 안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일과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 있는 귀한 것을 추구함으로써 갈증이 해소됩니다. 도피하지 말고 삭개오처럼 뽕나무 위에 올라가십시오. 가식을 벗고 자신의 외로움을 주님 앞에 온전히 내놓으십시오. 외로워서 돈을 벌고, 외로워서 동포를 팔았던 삭개오는 주님을 만나자 외롭지 않았습니다. 그는 외로움을 자초하는 삶의 방식을 내던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누는 삶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아직 여정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외로움의 문제 역시 온전히 해결되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앞길에 언제 또다시, 어떠한 계기들을 통하여 외로움을 겪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머리 둘 곳 없이 외로우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삭개오에게 돌아갈 곳이 생겼습니다. 외로움이 자신을 찾아올 때 가야 할 곳은 다름 아닌 주님입니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주며 함께 성장의 길을 모색해 줄 공동체입니다. 사막교부와 함께하는 묵상 너 자신을 알라. 그러면 결코 넘어지지 아니하리라. 영혼에 일감을 주라. 다시 말해 부단한 기도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주라. 다른 자가 영혼에 사념邪念을 주기 전에 그리하라. - 무명의 원로 기도 주님, 채우고 채워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 재물과 성공과 인간관계에 매이지 않게 하소서. 외로움을 느낄 때마다 가식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어린아이처럼 주님께 달려가게 하소서. F.I.A LIVE WORSHIP - 하나님의 열심 (피아버전) / ZEAL OF GOD (피아버전)
3월 21일 사순절 묵상 / 외로움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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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교회 노스욕
2025년 3월 20일
In 수요성서학당
수요성서학당 /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 성경
수요성서학당 /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성경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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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교회 노스욕
2025년 3월 20일
In 수요성서학당
우울감  성경말씀 광야에서 하룻길을 걸어 들어갔다. 어느 로뎀나무로 가서 그 아래에 앉았다. 그는 목숨을 거두어 가 달라고 했다. 이렇게 말했다. “이제 됐습니다, 여호와여, 내 목숨을 가져가 주세요. 내가 조상들보다 나을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5그는 로뎀나무 아래에 누워 잠이 들었다. 그런데, 보라, 천사가 그를 건드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천사는 그에게 말했다. “일어나세요. 음식 좀 드세요.12지진이 있은 뒤에 불이 났다. 불속에 여호와는 계시지 않았다. 불이 난 다음 가느다랗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열왕기상 19장 4-5, 12절) 묵상 수많은 현대인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도 우울증이 있었습니다. 바로 선지자 엘리야가 우울증을 앓았습니다. 그는 기도를 통해 가물었던 이스라엘 땅에 소낙비를 내리는 기적을 행하기도 했고, 우상을 섬기던 아합과 이세벨 여왕을 상대로 영적 전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자연적인 죽음을 보지 않고 불말들이 모는 수레를 타고 승천한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위대한 선지자도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열왕기상 19장 4절은 엘리야가 얼마나 우울증에 시달렸는지를 보여줍니다. 로뎀나무 아래에서 하나님에게 목숨을 거두어 달라는 그의 모습은 불안하고 무기력해 보이기만 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내리신 처방을 기억하십시오. 엘리야는 하나님의 천사가 전해 준 떡과 물을 마신 뒤 힘을 얻었습니다. 기력을 회복한 뒤 그는 가능한 한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진 호렙산으로 가서 깊은 침묵 가운데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자신이 호렙산을 찾아온 이유를 고했습니다. 왜 우울증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지, 왜 죽고 싶었는지 마음속 깊은 이야기들을 기도로 아뢰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터놓고 마음을 나눈 후에야 엘리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의 우울증은 요란하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가장 깊은 곳에서 들리는 세미한 소리를 통해 치유되었습니다. 밖이 아니라 깊은 안으로부터, 세미한 음성으로부터 치유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 깊은 곳에 숨어있던 영혼의 목소리였고, 깊은 심연을 치유하는 존재의 빛이었던 것입니다. 성경을 묵상하는 것과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갖는 침묵의 시간은 서로 가깝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침묵으로 이끌고 침묵은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게 합니다. 침묵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마음의 조용한 중심으로 꿰뚫고 들어옵니다. 말씀은 침묵으로 이어지고, 침묵은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헨리 나우웬은 말합니다. “말씀은 침묵 가운데 활력이 생겨나고, 침묵은 말씀에 대한 가장 심오한 반응입니다.” 사막교부와 함께하는 묵상 나는 한층 더 높은 것을 겨냥하기 위해 내 위치를 벗어나 본 적도 없고, 어둠 속으로 버려졌다고 해서 얼굴을 붉힌 적도 전연 없다. 내 유일한 생각은 이것이니, 나의 옛사람을 벗어던지게 해 달라고 주님께 기도하는 일일 뿐이다. - 무명의 원로 기도 주님, 제 마음에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릴 때, 생명의 떡과 쉼으로 치유하소서. 고요한 침묵의 광야로 인도하시고 세미한 음성으로 병든 마음을 치유하소서. 손영진 - 정결 (40주년 콘서트)
3월 20일 사순절 묵상 / 우울감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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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교회 노스욕
2025년 3월 19일
In 설교
침묵과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말씀의 도전과 깊은 성찰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이제 진리, 자비, 그리고 정의를 증언함으로 평화 속에서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은 모세에게 "부를 수 없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십계명에서는 이 이름은“만들어서는 안 되는 이름입니다. “설명해서는 안 되는 이름”입니다. 설명하면 그것은 이미 그의 이름이 아닙니다. 이름 지을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닙니다. 우리의 진실한 삶의 고백이 신의 이름이 되어야 합니다. 모세는 야훼로, 하갈은 엘로이로, 예수님은 아버지로 고백했던 것처럼 나의 하나님의 이름을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수많은 신앙의 고백을 이어 나의 고백을 살아가겠습니다. 누군가 우리가 믿는 신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팔레스타인 땅에 오셔서 30여 년을 우리들과 함께 사셨던 그분을 가리키겠습니다. 그의 이름 글자가 아닌 그의 삶이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보이는 형상입니다” (골 1:15). 그리고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신의 이름을 몸으로 보여주겠습니다. 주님 우리의 동행이 되어 주십시오 아멘 책임과 의무의 신앙 십계명(4) 이름 짓기의 신앙 / 염웅 목사
책임과 의무의 신앙 십계명(4) 이름 짓기의 신앙  / 염웅 목사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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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교회 노스욕
2025년 3월 19일
In 찬양대
생명의 길을 보이시리니
생명의 길을 보이시리니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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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교회 노스욕
2025년 3월 19일
In 묵상
죄책감  성경말씀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오, 하나님, 한결같은 사랑으로. 크신 자비로 내 범죄를 지워 주십시오. 나를 잘 씻어 주셔서 잘못이 사라지게 하시고, 죄가 없어지도록 나를 깨끗하게 해 주십시오. 내 범죄를 내가 잘 알고 있고, 내 죄가 늘 내 앞에 있습니다. (시편 51편 1-3절) 죄와 죽음은 인류 공통의 문제입니다. 사람이 죄를 한 번도 짓지 않고 살 수는 없습니다. 죄를 저지른 뒤 일어나는 감정인 죄책감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책감이 반드시 나쁘지는 않습니다. 죄책감이 없다면 우리는 이내 방탕해지거나 냉담해질 것입니다.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의 양심이 마비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건전한 죄책감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마련해주고 죄로 막히게 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도록 돕습니다. 그러나 지나친 죄책감은 마음의 병입니다. 죄책감이 지속되도록 내버려 두거나, 삶의 매 순간 죄책감을 느낄 정도로 자신의 감정이 예민해진다면 자신에게 부담을 주게 되어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그러니 기억하십시오. 이 세상에 그 무엇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어내지 못합니다. 죄의 심연에 빠져있을 때, 어리석음과 결함투성이의 허물이 우리의 마음을 할퀼 때, 하나님마저도 우리를 버리셨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힐 때 다음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께로 나아가십시오. * 요일 1:9 우리의 죄를 회개하면 용서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 시 103:12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동에서 서가 먼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옮겨버리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롬 8:2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중세에 어떤 수도사들이 산꼭대기에다 수도원을 지어놓고 공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산 밑에는 작은 마을이 있었는데 동네 사람들은 그들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 몹시 궁금했습니다. 어느 날 수도사 한 사람이 먹을 것을 구하러 마을에 내려왔습니다. 이때 농부 한 사람이 달려가서 수도사에게 넙죽 절하며 물었습니다. “신부님, 산꼭대기에 수도원을 지어 놓고 도대체 신부님은 무얼 하고 지내시나요?” 수도사는 농부를 일으켜 세우고 그의 손을 잡은 채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우리는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고 … 넘어졌다가 또다시 일어나고 … 넘어졌다가 또다시 일어난답니다.” 넘어졌다고 낙심치 말고 다시 일어나십시오. 우리의 삶이 죄책감을 느끼는 것에서 멈추거나 함몰되지 않고 뜨거운 회개와 행동의 변화로 이어질 때 정결한 마음이 준비될 것입니다.  사막교부와 함께하는 묵상 형제들이여, 영혼 구원을 위해서 열심을 내라. 심판의 날은 두렵고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대들이 영혼을 드리고 거룩한 영을 받으라. - 무명의 원로 기도  주님, 죄책감에 빠져서 오히려 당신을 멀리하지 않게 인도하소서. 세상에서 넘어질 때마다 당신께서 손을 내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주님여 이 손을 | Best 국악 찬양 | 들리오워십 | Precious Lord, Take My Hand
3월 19일 사순절 묵상 / 죄책감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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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교회 노스욕
2025년 3월 18일
In 묵상
성경말씀 7즐겁게 춤추는 여자들이 이런 노래를 주고받았다. “쳐부수었다네, 사울은 수천 명을, 다윗은 수만 명을!” 8그러자 사울이 크게 화를 냈다. 그는 이 말에 기분이 상해 이렇게 말했다. “여자들이 다윗에게는 수만 명이라 칭송해 주고, 내게는 수천 명이라 칭송해 주는군. 그렇다면 그에게 더 줄 것은 임금자리뿐이겠군.” 9사울이 그날부터는 내내 다윗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게 되었다. (사무엘상 18장 7-9절)  묵상 교만은 비교의식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울은 다윗이 블레셋의 거인 장수 골리앗을 물리치고 사람들이 열광하자 여기에 질투를 느낍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다른 누군가가 성공할 때 마냥 좋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자기보다 한 수 아래라 여겼던 이가 그러할 때는 더욱더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공평하신 분임을 신뢰한다면 그러한 감정에 잠시 휘둘리더라도 이내 툭툭 털고 일어나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울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바라보기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좋은 것을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인정에 눈이 멀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고유한 잠재성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사울은 이미 왕이었습니다. 백성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었고 선정을 베풀 수 있는 자질과 용기도 있었습니다. 그가 당시 누리고 있었던 것은 다른 열등감을 극복하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나아가서 자신에게 주어진 은총의 선물을 돌이켜 보는 대신 비교의식에 집중한 순간, 그때까지 누리고 있던 은총이 그의 머릿속에서 사라졌습니다. 상한 자존심을 등에 업은 채 열등감이 머릿속에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겸손은 하나님의 은총을 상기시키지만, 교만은 하나님의 은총을 망각하게 합니다. 그의 마음이 뒤틀리자 사물과 사건이 왜곡되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다윗을 죽이는 일에만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에게는 주님께 갈 기회가 언제나 있었습니다. “주님, 다윗이 저보다 칭찬을 받으니 마음이 씁쓸합니다. 그러나 주님, 당신께서 제게 주신 이 장수와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그를 잘 세워서 당신의 나라를 잘 다스리겠습니다”라고 기도했다면 자신의 약함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에게 충분하다, 내 은혜가! 내 능력은 약한 것 속에서 완전해지기 때문이란다.” 그러므로 나는 오히려 아주 기쁘게 나의 약점들을 자랑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 위에 거처를 두시도록 말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 모욕, 쪼들림, 박해와 곤경도 기쁘게 여깁니다. 내가 약할 때, 그때에 내가 강하니까요.”(고후 12:9-10). 내가 약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더 강한 법입니다. 공평하신 그분은 우리가 그분을 찾으면 언제나 우리를 향해 달려오십니다.  사막교부와 함께하는 묵상 죄를 짓지는 않으나 교만한 자보다 죄를 지었을 때 자기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자를 나는 더 좋아한다. 왜냐하면 후자는 스스로를 죄인으로 생각하여 마음으로 겸손하지만, 전자는 자기가 실제로 의로우므로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고 그것을 떠벌리기 때문이다. - 사르마타스 기도 주님, 남들과 비교하는 오만과 열등감과 질투의 감옥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항상 당신의 은총을 찾게 하소서. 예수 피를 힘입어 Only by Your Blood | 예람워십
3월 18일 사순절 묵상 / 교만과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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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교회 노스욕
2025년 3월 18일
In 묵상
분노 성경말씀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언 16장 32절)  묵상 분노는 잘못 다스리면 상대방은 물론이고 자신과 공동체까지 파괴할 수 있는 양가적인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마치 성냥개비와 같아서 적절한 시간에 불을 붙이면 온기를 주고 음식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자칫하면 소중한 것들을 불태울 수도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합니다. “누구든지 분노할 수 있다. 이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올바른 정도로 가장 적절한 때에, 올바른 목적과 방법으로 분을 내는 일은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 쉬운 일도 아니다.” 모세는 적절한 분노와 적절치 못한 분노에 대한 좋은 예를 보여줍니다. 그는 금송아지를 만들어 이를 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분노했고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렸습니다. 이때 모세의 분노는 하나님께 합당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뜻과 감정에 이끌려 바위를 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 짜증을 담아 약간의 화를 냈을 때 그는 가나안 땅을 밟지 못하는 벌을 받았습니다. 그 분노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자기 의와 오만에 의해 생긴 분노였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경우 외에도 성경은 끊임없이 적절한 분노와 적절치 못한 분노의 예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가인은 거절감과 인정받지 못한 것에 분노해 자신의 동생을 쳐 죽였습니다. 타락한 예루살렘 성전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분노하시며 성전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고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의 의자를 뒤엎으셨습니다. 전자가 죄가 되는 분노라면 후자는 거룩한 분노입니다. 거룩한 분노가 죄에 저항하며 이를 변모시킨다면 죄가 되는 분노는 악한 세상에 또 다른 죄를 더합니다. 거룩한 분노가 하나님의 뜻과 성령의 인도를 받아 움직인다면 죄가 되는 분노는 사단의 조종을 받아 움직입니다. 즉, 그리스도와 자신이 일치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생하는 분노야말로 죄가 되는 분노입니다. 이 죄가 되는 분노는‘자아 중심적 뜻과 감정’을 다스리지 못할 때 발생합니다. 그러니 거룩한 분노를 얻기 위해서, 세상을 바꾸기 전에 먼저 자신의 판단, 감정, 의지를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도록 훈련하십시오.  사막교부와 함께하는 묵상 쉽게 화를 내는 사람은 설령 그가 죽은 자를 살린다 해도 하나님께서 받아주시지 않는다. - 아가톤 기도 주님, 분노의 상황에서 잠시 멈출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하소서. 제 자신의 영혼을 먼저 살필 수 있는 겸손한 마음을 주소서. 하나님 안에서 마땅히 분노해야 할 일을 피하지 않는 용기를 주소서.  그날-소리엘 That Day
3월 17일 사순절 묵상 / 분노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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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교회 노스욕
2025년 3월 15일
In 묵상
어느 기다림의 끝날  성경말씀 한나라는 예언자가 있었는데, 파누엘의 딸로, 아셀 지파 사람이었다. 나이가 많이 들었는데, 결혼하고 7년이 지나 남편이 죽었다. 남편을 여의고서 84세에 이르렀다. 그는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금식하며 매달려 기도했다. 밤이든 낮이든 예배가 있으면 참석하곤 했다. 바로 그 시간에 한나가 다가와서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풀어 주시기를 바라면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이 아기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주님의 율법에 맞추어 모든 일을 끝내고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자기들의 도시 나사렛으로 돌아왔다. (누가복음 2장 36-39절) 묵상 때로, 숨어계신 하나님은 기다림의 끝에 이르러서야 만날 수 있습니다. 아셀지파 바누엘의 딸인 안나 선지자 역시 오랜 시간 기다렸습니다. 과부가 된 후로 팔십 사 년을 더 살았다 하니 100세 이상 되었을 무렵에야 그분을 만나 뵈었던 것이지요. 이를 위해 그녀가 오랜 기간 한 일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성전에 꾸준히 가는 것과 기도하는 것, 이 두 가지였습니다. 이 두 가지를 하며 그녀는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직도 얼굴을 드러내시지 않는 하나님의 아들을 기다리는 것. 그 기다림은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한 것이었습니다”(시 130:6). ‛마침 이때에 나아와서’ 그 기다림의 끝에 안나 선지자는 성전에서 할례받는 주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 하심을 따라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했습니다. 오랜 시간의 기다림 끝에 비로소 우리는 그분의 얼굴을 만납니다. 그 기다림도 역시 온전함으로 이끄는 은총입니다. 그러나 나에게 온전함이란 없습니다. 온전함을 지향할 수는 있겠지만 자신이 온전함 자체인 그분이라도 된 양 온전함을 끌어올 수는 없습니다. 갈보리 십자가 언덕을 오를 힘도 없습니다. 오랜 시간의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 우리가 아는 것은‘혼자서는 결코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언가 다른 것이 와야 합니다. 일어나야만 합니다. 이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비록 조금 부족할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고 사랑하며 희망을 버리지 않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기다림의 끝날, 마치 꿈과도 같이 하나님이 오셔서 당신의 얼굴을 보여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침내 오래된 꿈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안나를 좇아, 기다리다 지쳐 죽어버린 관계와 꿈들을 다시 살리십시오. 그리고 명령하십시오.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때가 되었으니, 나사로야 나오너라. 죽은 지 오래되어 아무도 희망을 걸지 않은 소망, 오랜 기도들과 희망들아. 때가 찼으니 나오너라. 칠십 년 포로생활로 이젠 막혀버린 꿈들, 때가 되었으니 일어나라.” 우리의 힘은 그분이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온전히 신뢰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사막교부와 함께하는 묵상 형제들이여, 어서 와서 진리에 순종합시다. 이곳에는 겸손이 있고 힘이 있으며, 기쁨이 있고 인내가 있으며, 형제애가 있고 오래 참음이 있으며, 사랑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랑을 가진 자에게서 하나님의 모든 계명들이 이루어집니다. - 모세 기도 주님, 당신의 얼굴 뵙기를 소망합니다. 이미 사라진 어릴 적 꿈이 생각나게 하시고, 포기한 소망들이 되살아나게 하소서. 저의 기억을 새롭게 구성하시고 삶을 새롭게 창조하소서. [기다림] 기다림 (가장 낮은 곳에서) | 대림절 찬양 | 기브너스 GIVENUS
3월 15일 사순절 묵상 / 어느 기다림의 끝날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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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교회 노스욕
2025년 3월 15일
In 묵상
너무 낯선 방식의 왕  성경말씀 참빛이 계셨다. 그 빛이 사람마다 비추신다. 세상 속으로 오고 계셨던 것이다. 세상 속에 그분이 계셨다. 세상은 그분을 통해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분 소유의 땅으로 그분이 오셨지만, 그분 자신의 사람들이 그분을 곁으로 모셔 들이지 않았다. (요한복음 1장 9-11절)  묵상 아기 예수가 탄생했을 당시 유대의 왕은 헤롯이었습니다. 그는 유대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했던 로마에 의해 왕으로 임명될 정도로 정치력이 뛰어나고 권력욕이 강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성전을 지어주는 정치적 역량을 보여주면서도 권력을 위해서는 아내와 아들을 죽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그에게 새로운 왕이 나셨다는 동방박사들의 말은 실로 분노할만한 일이었습니다. 영광의 주님, 부활의 주님께서는 숨어계신 하나님으로 온 세상에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이 구체적인 역사 속에서 낯선 아기 예수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아기 예수의 모습은 자기가 왕이 되려고 하는 이들에게는 만만해서 이용하거나 제거하기 쉬운 대상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초라한 말구유 위의 아기로 오셨다는 사실이 낯설게 다가온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창조계획 아래 이루어지는 역사가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데서 나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억지로 무릎 꿇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진정한 자유 아래 당신과 사랑의 관계를 맺기 원하셨습니다. 성육신 사건이 지닌 소박한 모습은 이 사랑의 증표입니다. 오만한 자에게는 이러한 소박함이 하나의 굴레가 됩니다. 오만함을 내려놓고, 겸손하게 이 땅에 오신 그분을 맞이하십시오. 우리가 다 헤아리지 못하는 방식으로 이 세계에 오신 하나님을, 소박하고 쉽게 아스러질 듯한 아기 예수의 탄생을 바라보십시오. 그분께서는 지금까지의 삶과 그 삶에서 길어 올려진 생각들, 그렇게 생각하는 방식을 바꿀 것을 요구하십니다. 사막교부와 함께하는 묵상 어둠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뵐 수 없을 것이다. - 요한 기도 주님, 가장 작은 자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주소서. 허영과 교만으로 흐려진 마음을 깨끗하게 하셔서 어둠 속에서도 별을 바라보게 하소서 베드로의 고백 + 주가 보이신 생명의 길 (피아버전) / PETER’S CONFESSION (FIA.ver) - 피아워십
3월 14일 사순절 묵상 / 너무 낯선 방식의 왕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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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교회 노스욕
2025년 3월 13일
In 수요성서학당
수요성서학당 /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수요성서학당 /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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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교회 노스욕
2025년 3월 13일
In 묵상
12 내 삶의 유일한 자랑 (Official Lyrics) | 어노인팅 8집 어둠도 주님을 기다리네  성경말씀 나는 여호와다. 다른 이는 없다. 나를 빼고는 하나님이 없다. 내가 너를 단단히 감싸 주겠다, 네가 나를 알지 못했는데도. 이는 사람들이 알도록 하려 한 것이다, 해 돋는 동쪽에서부터 해 지는 서쪽까지 나 말고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나는 여호와다. 다른 이는 없다. 나는 빛을 빚고 어둠을 창조하는 하나님이다. 평화를 이루고 재난을 내리는 하나님이다. 나는 여호와다. 이 모든 것을 해내는 하나님이다. (이사야 45장 5-7절)  묵상 예수님께서는 ‘유대 왕 헤롯 때에’(눅 1:5)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기 이전의 시대는 신구약 중간기라 불리는데, 말라기 선지자 이후 약 40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가 나타나지 않았기에 암흑기라고도 불립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그리스 사이에 있었기 때문에 많은 전투가 그곳에서 벌어졌습니다.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는 유대를 통치하면서 이방의 오락물을 들여왔고 성전에 이방의 제물을 바쳤습니다. 악한 사람을 대제사장으로 임명하고 우상숭배를 거절하는 사람을 고문하고 죽였습니다. 이때 아론의 족속 중 맛디아라는 사람이 6,000명의 사람과 더불어 시리아와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둡니다. 이후 100년간 이스라엘 민족은 이방의 통치자로부터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싸웠습니다. 하지만 이 세력의 힘은 이내 약해졌고, 예수님의 탄생 시기에 이스라엘은 한 사람이 로마의 비호 아래 유대를 통치합니다. 이 사람이 바로 헤롯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시대에서, 어둠의 한가운데서 태어나셨습니다. 어둠의 한가운데 빛이 생겨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빛이십니다. 이 빛이 어둠을 향해 들어옵니다. 우리가 고난을 겪을 때, 알 수 없는 일들에 휩싸인 채 불안에 가득 차 있을 때 하나님께서 함께하십니다. 이 빛으로 인해 어둠도 자신의 위치를 찾게 됩니다. 어둠은 악이 아닙니다. 악은 하나님의 계심을 부정하고 거부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밝고 아름답고 지혜로운 것이라 해도 그곳에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으면 그것은 악입니다. 무조건 밝은 곳으로 가려고 하지 마십시오. 나의 빛이 아니라, 빛이신 그분을 맞아들이십시오. 어두운 자신의 자리에 하나님의 빛을 받아들이십시오. 빛이 오면 하나님의 뜻이 밝히 드러납니다. 어둠 한가운데 있는 십자가 위에서도, 시대의 고통과 악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항상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곳에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실로 우리의 모든 것 되십니다. 사막교부와 함께하는 묵상 인식의 바다를 건너가려고 하는 자는 인내하며, 겸손하고, 깨어 있으며, 절제한다. 이런 네 가지와 상관없이 전진하려는 자는 마음이 혼란해져 건널 수 없다. - 무명의 원로 기도 빛과 함께 어둠을 주신 주님, 어둠 속에서 빛을 바라보게 하소서. 어둠을 회피하지 않게 하시고, 고통과 악이 있는 곳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3월13일 사순절 묵상 /  어둠도 주님을 기다리네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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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교회 노스욕
2025년 3월 12일
In 묵상
하나님께서는 부서진 것들을 사용하신다  성경말씀 타작 널판으로 검은쿠민을 타작하지 않습니다. 탈곡 썰매를 쿠민 위로 굴리지 않습니다. 막대기로는 검은쿠민을 털어 내고, 쿠민은 작대기로 털어 냅니다. 28곡식이 으깨질 수 있습니다. 언제나 타작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탈곡 썰매와 그 말들을 몰기도 합니다. 그래도 곡식을 으깨지는 않아야 합니다.(이사야 28장 27-29절)  묵상 “하나님께서는 부서진 것들을 사용하신다”라는 히브리 격언이 있습니다. 곡식의 껍질이 벗겨지고 부서져야 빵을 만들 수 있는 원료가 됩니다. 이렇듯 우리도 부서져야 합니다. 부서져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능력과 재능이 많아도 교만과 아집, 자애심이 깨어지지 않으면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축복이 자리할 수 있는 공간이 없습니다. 이사야서는 각자의 쓰임새에 맞게 부수신 뒤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보여줍니다. 그분께서는 각자에게 주어진 최적의 모습으로 우리를 연단하여 축복을 담을 그릇으로 만드십니다. 콩과 같은 사람은 도리깨로 두들겨 타작하시고, 보리와 같은 사람은 연자 맷돌에 굴리거나 절구에 넣어 찧으십니다. 이렇게 그분께서는 다양한 부서짐을 경험케 하심으로써 그 사람을 보다 귀한 그릇으로 만드십니다. “사람이 보통 겪는 유혹 말고는 유혹이 여러분을 덮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힘에 벅차는 유혹을 받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실 겁니다. 오히려 여러분이 유혹받을 때에 빠져나갈 길을 내셔서 여러분이 견뎌 낼 수 있게 해 주실 겁니다.”(고전 10:13). 모든 믿음의 선진들은 이렇게 부서짐을 겪은 뒤 하나님의 도구로 쓰였습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환도뼈를 꺾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가장 중요한 순간, 그 사람의 중심부위를 꺾으십니다. 내 힘으로 모든 것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는 순간,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하나님께서 지닌 영광의 얼굴은 사라지고 맙니다. 절름발이가 된다 할지라도 눈의 비늘을 벗기십시오. 그래야 태양을 봅니다. 새로운 시간이 열립니다. 하나님 없는 자신은 절름발이만도 못한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면서 하나님과 더불어 절룩거리며 나아가십시오. 이 발걸음이 자신을 온전히 내세우는 당당한 걸음보다 낫습니다. C.S. 루이스는 말합니다. “모든 것을 내게 다오. 내가 원하는 것은 너 자신이다. 나는 너의 그 자아를 죽이러 왔다.” 이 말을 마음에 새기며 걸어가는 길이야말로 생명의 길입니다. 야곱은 부서짐을 통해 ‘나는 누구이고, 하나님께서는 누구인지’를 알았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자아로 거듭났습니다. 사막교부와 함께하는 묵상 사람이 출렁이는 물속에서 자기 얼굴을 볼 수 없음과 같이 우리의 영혼도 헛생각들이 완전히 부서져서 정화되지 않는 한, 고요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릴 수 없다. - 무명의 원로 기도 주님, 저를 부수어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소서. 광야를 지나며 Passing Through The Wilderness | 예람워십
3월 12일 사순절 묵상 / 하나님께서는 부서진 것들을 사용하신다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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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교회 노스욕
2025년 3월 11일
In 설교
책임과 의무의 신앙 십계명(3) 불안에서 오는 우상 / 염웅 목사
책임과 의무의 신앙 십계명(3) 불안에서 오는 우상 / 염웅 목사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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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교회 노스욕
2025년 3월 11일
In 찬양대
사순절 첫쨰주 찬양 / 간구
사순절 첫째주 찬양 / 간구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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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교회 노스욕
2025년 3월 11일
In 묵상
삶은 신의 암호다  성경말씀 어디로 내가 가야 하겠습니까, 주님의 영으로부터 벗어나자면? 주님 얼굴 앞에서 벗어나자면, 어디로 내가 달아나야 하겠습니까? 내가 하늘로 올라가더라도 거기에 주님이 계시고, 내가 자리를 스올(죽은 사람들의 나라)에 펴더라도, 거기에 주님이 계십니다. 내가 아침노을의 날개를 타고 날아올라 바다 끝에 가서 머문다 해도, 거기서도 주님의 손이 나를 이끄실 것입니다. 나를 붙잡아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오른손이. (시편 139편 7-10절) 묵상 ‘지금 여기’는 일상에서 신비와 접촉하는 암호를 풀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유한한 시공간에 갇혀 살면서도 ‘시간 속에 영원’을, ‘공간 속에 무한’을 그리며 살아갑니다. 오늘 이 순간, 이 공간에 천사는 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하며 하늘과 땅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이곳을 하나님께서 현존하시는 자리로 만드십시오. 지금 이곳에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오십니다. 지금 이곳을 광야로 만드십시오. 그리하면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이 다양한 십자가의 형태로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겪으셨던 유혹들이 지금 이 순간 어떻게 결을 달리하며 우리 곁에 오는지도 알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계실 수 있는 공간을 빼앗은 채 온갖 유혹들이 우리의 일상에 들러붙어 있습니다. 이 유혹들과 정면으로 맞서기 전에, 유혹들로 인해 캄캄한 절벽 앞에 선 자신,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먼저 구하십시오. 이때 삶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의 암호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기에 창세기 저자가 고통 가운데 비로소 하나님의 현존을 마주하여 창조에 감추어진 비밀을 풀었듯이 말입니다. 삶은 숨어계신 하나님의 놀이터와도 같습니다. 땅에 버려진 홀씨가 어느 날 적막한 시공을 가로질러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듯,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고통과 슬픔이 십자가의 아름다움과 부활의 생명으로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새로운 시간과 공간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주님, 당신의 얼굴을 떠나 어디로 가겠습니까? 하늘로 올라가도 주님은 거기 계십니다 지옥으로 가도 거기 계십니다 새벽에 날개를 달고 어디론가 날아간다 해도 저 바다 먼 끝에 산다 해도 어디든 당신은 나를 인도하십니다 어둠 가운데도 계십니다 빛 가운데도 계십니다 아픔 가운데도 계시고 기쁨 가운데도 계십니다 내 삶의 모든 곳에 당신은 살아 숨 쉽니다 - 시편 139편  사막교부와 함께하는 묵상 피조물은 모두 하나님을 드러낸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존하시며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보다 먼저 존재하지 않았다. - 팔라디우스 기도 주님, 내가 살아가는 지금, 여기에 찾아오소서. 이곳이 그리스도의 신비를 해독하는 광야가 되게 하시고, 모든 곳에서 살아 숨 쉬는 주님을 발견하게 하소서. [나비워십]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
3월 11일 사순절 묵상 / 삶은 신의 암호다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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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교회 노스욕
2025년 3월 10일
In 묵상
사랑은 받아들여짐을 아는 것이다  성경말씀 사랑은 이 사실에 있습니다.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어 우리 죄를 없애 주는 희생제물로 삼으셨다는 데 있습니다. (요한일서 4장 10절) 묵상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우리는 늘 들어왔습니다.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려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먼지와 같은 우리가 감히 그분을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은총의 놀라운 선물입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분을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가 그분에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을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이야말로 가장 놀랍고도 중요합니다. “내가 말하는 사랑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요일 4:10). 이에 대한 믿음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가운데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사랑’을 깨달을 때 옵니다. 온갖 혼란 때문에 생기는 상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는 열린 공간의 표지입니다. 믿음은 그러한 상황 속에 계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오롯이 그분께 자신을 맡기십시오. 당신께서 하시는 일은 언제나 옳다고…. 이 시련들이 우리를 궁극적인 차원으로 올려놓을 것이라는 그분의 약속을 신뢰하십시오. 혼란을 통해, 우리의 본성이 깨어지고 조각날 때 그 조각들이 한데 모여 그분을 향하면 ‘나는 누구일까? 하나님은 누구일까? 나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이 우리 안에서 움터 나옵니다. 비로소 우리의 모든 관심이 그분을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삶은 존재 자체의 선물을 받아들이고 그분 앞에 우리를 세우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에 의해 자신이 온전히 받아들여졌음’을 깨닫고 이것을 삶으로 녹여내기 위해 용기를 내는 것입니다. 내 눈빛을 꺼 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아 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내 팔을 부러뜨려 주소서, 나는 손으로 하듯 내 가슴으로 당신을 끌어안을 것입니다. 내 심장을 막아 주소서, 그러면 나의 뇌가 고동칠 것입니다. 내 뇌에 불을 지르면, 나는 당신을 피에 실어 나를 것입니다. - 릴케, 내 눈빛을 꺼 주소서  사막교부와 함께하는 묵상 지혜의 시작은 하나님의 자비 앞에서 사는 것이며,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 무명의 원로 기도 주님, 내가 스스로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기보다 주님이 하실 일을 바라보게 하시고, 주님 앞에 어떻게 설까를 알게 하소서. 십자가의 전달자 - 온누리 워십콰이어 @ 2015 온누리교회 고난주간 심야예배
3월 10일 사순절 묵상 / 사랑은 받아들여짐을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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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교회 노스욕
2025년 3월 08일
In 묵상
그날의 연합  넷째 날 성경말씀 바로 그날에 그대들이야말로 알게 될 겁니다. 내가 내 아버지 안에, 그대들이 내 안에, 내가 그대들 안에 있다는 것을요.(요한복음 14장 20절)  묵상 이어령 교수의 어느 글에 '강촌에 온갖 꽃이 먼 빛에 더욱 좋다'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강촌에 봄이 왔습니다. 강을 따라 온갖 꽃이 피어있습니다. 배를 타고 가니 강둑의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먼 빛에 더욱 좋습니다. 누리며 바라보니 참 좋다는 것입니다. 강둑에 핀 꽃을 배를 타고 가면서 보는 눈과 꽃을 꺾어 다른 사람에게 팔기 위해 바라보는 눈은 전혀 다릅니다. 꽃을 통해 무엇인가 자신이 바라는 것을 이루려는 사람은 꽃의 모습을 온전히 바라볼 수 없습니다. 욕망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자기 목표를 이루려고 나무와 풀과 사물을 집중해서 노려볼 것입니다. 그러면 꽃, 나무, 풀, 사물은 자신의 욕구 때문에 그 모습이 가려져 버립니다. 물끄러미 아무 욕구 없이 바라보는 그 이면에는 존재를 꿰뚫는 통찰력이 들어있습니다. 이렇게 ‘관조의 시선’과 ‘파괴의 시선’은 다릅니다. 신앙생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광야로 보내심으로써 우리가 존재로 살 것인지, 소유로 살 것인지를 선택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존재를 택할 때 비로소 ‘하나님이 내 안에, 내가 하나님 안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하나님이 만들어주시는 성공이 내 안에 있는 게 아닙니다. 이것을 잘 묵상해야 합니다. 나무꾼이 도끼를 들고 찍으려 하는 나무를 대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대한다면, 그 시선은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파괴적인 움직임에 지나지 않습니다. 욕망에 뿌리를 둔 장악욕과 아집, 인정 욕구와 두려움, 분노와 좌절감이 있을 때 이는 강력한 끌개가 되어 파괴의 시선으로 하나님을 찾아다니게 됩니다. 자기 뜻에 맞게 하나님을 재단하고 표적으로 삼으려 합니다. 그렇게 자신이 찾아낸 하나님을 조각냅니다. 하나님을 자기 방식으로 붙잡아서 자기 마음대로 만들어 내지 않을 때, 도끼를 들고 하나님을 찾아 헤매지 않고 하나님께서 내게 오실 때 비로소 하나님을 온전히 볼 수 있는 관조의 시선은 가능해집니다. 스데반은 죽음을 앞에 두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을 보니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주시되” 스데반은 온전히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계심을 압니다. 그런 그에게 아브라함이 보입니다. 욥은 고난을 겪고 나서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 광야에서 베일은 벗겨지고 마음의 눈은 맑아집니다. 소유의 비늘과 안개가 걷히고 난 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맑은 눈으로, 있는 그대로의 그분을 관조할 수 있습니다. 사막교부와 함께하는 묵상 우리가 육적인 동요의 포로가 되는 것은 하나님을 관상觀想하는 것에서 우리 마음을 멀리하기 때문이다.- 테오나스 기도 주님, 당신은 오셨고 또 오시고 계십니다. 제 안에 계시고 또 밖에 계십니다. 이미 오신 당신을 존재의 맑은 눈으로 바라보게 하소서. 십자가의 전달자 - 온누리 워십콰이어 @ 2015 온누리교회 고난주간 심야예배
3월 8일 사순절 묵상 / 그 날의 연합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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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교회 노스욕
2025년 3월 07일
In 묵상
그의 말을 들으라 3 - 셋째 날 성경말씀 예수님이 눈을 들어 바라보시니 큰 무리가 자기한테로 오고 있다. 그래서 필립한테 말씀하신다. “이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서 사야 할까요?” 6이 말씀을 하신 것은 필립을 시험하시려는 것이었다. 예수님 자신은 자기가 무엇을 하실지 알고 계셨던 것이다. 7필립이 예수님께 대답했다. “200데나리온어치 빵이 있어도 그들에게 충분하지 않습니다. 저마다에게 조금씩만 돌아가게 하려고 해도요.” (요한복음 6장 5-7절)  묵상 하나님과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수난 받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십자가 사건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말씀을 듣고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 응답의 과정에서 갈라진 마음을 잘 맞이하고 보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자, 이들을 너희가 먹여라. 이 문제를 해결하여라. 많은 이들이 먹을 수 있게끔 준비하여라.” 제자들은 이 말씀에 순전한 믿음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니,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도 그렇지. 너무 무리한 요구 아닌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때로 하나님의 요구는 얼핏 보기에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비합리적인 일로 보일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요구라면 그러한 판단을 잠시 내려놓고 일단 마음에 품으십시오. “이건 절대로 할 수 없어”라고 말하며 관심을 접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이니 일단 받아들이자”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필립은 말씀을 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힘입어 할 수 있다”라고 일단 응답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을 돌아보자 흔들렸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이루어나가려고 할 때 다시금 현실은 믿음을 뒤흔들려 합니다. 그동안 자신이 쌓아놓은 정보, 지식, 감정, 상처와 고정관념이 우리의 믿음을 이리저리 흔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이런 생각들이 떠오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믿음은 흔들리며 자랍니다. 의심과 생각들을 잘 만나고 잘 보내 주십시오. 이러한 흔들림 또한 기도의 여정임을 주님께서는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생각과 두려움들을 회피하지 않고 이를 주님께 아뢰고 다음 걸음을 내딛어야 합니다. 방어하려 하지 마십시오. 이기려 하지 마십시오. 그저 주님께 이를 올려 드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하십시오. 더욱 큰 차원과 만나십시오.  사막교부와 함께하는 묵상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다면 그분은 우리에게 나타나실 것이고, 우리가 그분을 붙잡으면 그분은 우리 곁에 머물 것이다. - 아르세니오스 기도 주님, 때로 당신의 말씀이 힘겨울 때, 우리의 믿음이 부족할 때 모든 두려움과 현실의 걱정을 당신의 말씀 안에서 잘 맞아주고 보내주게 하소서. 사모곡_과천성당 청년회 AMICUS CONCERT 2013
3월 7일 사순절 묵상 그의 말을 들으라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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