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계절이 돌아왔다. 한 해 동안 기다려온 것은 무엇인가. 여러 해 동안 꾹 참고 기다려온 것이 있다면 그 기다림의 가치는 어떤 것인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마음 가득 희망을 품고 기다려본 적이 있는가. 겨울눈으로 감싸둔 꽃과 잎을 피워낼 생각으로, 따스한 봄비를 기다리는 나무처럼 기다린 적이 있는가. 걷잡을 수 없는 속도에 지친 우리가 느끼기엔 어려운 순간일 수도 있겠다.
지난 한 해 아무것도 못 보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면,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모를 만큼 급하게 살아왔다면 대림절기인 12월 한 달만이라도 기다림을 느껴보자. 밥을 천천히 먹으면서 얼마나 맛있는지, 느릿느릿 산책하면서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껴도 좋을 것이다. 내 삶의 속도를 들꽃과 나무, 햇살과 바람, 무엇보다 달팽이처럼 늦춰 주변의 사랑하는 이들과 자연을 찬찬히 바라보자. 그러면 지난 내 삶의 열매 한 알에 깃든 기다림의 시간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되지 않을까. 대림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리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기도하는 시기다. 이때 지금까지 살면서 절박하게 기다렸던 그 무언가를 생각하며 기다림의 과정을 떠올려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3~5년을 뿌리내리다 죽순을 내는 대나무나 땅속 7년의 기다림 끝에야 성충이 되는 매미를 생각하면, 때론 기다림의 결과보다 기다리는 과정이 더 소중해 보이기도 한다.
올해 대림의 시기 동안은 지금까지의 삶의 속도를 늦추고 기다림을 즐겨보자. 기다리면서 내가 무엇을 기다리는지와 오실 주님은 어떤 분이고 오셔서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무엇보다 오셔서 누구와 주로 교류했는지를 살피는 대림절을 보내자. 한순간도 쉽지 않은 날이었지만 이미 오신 주님으로 인해 오늘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려보자.
맑은 공기로 숨 편히 쉰 날이 그리 많지 않았지만, 계절의 변화 속에서 태어난 수많은 생명이 선물처럼 곁에 와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해줬다. 한 해 동안 내 곁에서 바뀐 자연의 변화를 떠올려보자. 계절의 바람을 몸으로 느껴본 적이 있는가. 주님은 태어날 때도 그랬지만 세상에 와서도 늘 자연과 깊이 관계를 맺었다. 그의 말씀 속에 이런저런 자연 이야기가 많은 걸 보면 얼마나 자연과 가까운 생활을 했는지를 알 듯하다.
주님이 하신 말씀 속의 자연을 깊이 묵상하면, 주님이 자연을 어떻게 바라봤으며 어떻게 관계를 맺었는지 알게 된다. 기후 위기로 희망을 말할 수 없는 상황까지 왔지만, 주님이 관계했던 나무와 흙과 바람, 새들을 기억해보자. 지금 우리가 자연과의 관계를 새롭게 한다면 그래도 아직 늦지 않았다.
“몸과 삶을 가볍게 해 바람에 몸을 싣고, 대림 여행을 준비합니다. 내 안에서도 생명의 싹이 나고, 자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소서. 생명의 빛을 따라 세상의 빛이 되겠습니다. 물로 하나님의 신비를 발견하게 하소서. 오늘도 새처럼 살며 주님을 기다립니다. 오늘 이곳에서 주님을 보고 그 앞에 나와 이웃을 만나게 도우소서. 주께서 불어넣은 숨으로 성령을 받게 도우소서. 창조주의 사랑과 질서를 경험하며 평강의 삶을 날마다 살게 하소서. 우리의 작은 실천이 누룩 돼 인간과 자연이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게 도우소서. 우리도 빈 항아리 돼 우리와 생명, 미래를 살릴 수 있게 도우소서.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땅, 물, 나무, 풀 한 포기도 함부로 대하지 않고 모두 어울려 다툼 없이 살게 하소서. 주님이 사랑하는 어린 양 모두가 풍성함을 누리기까지 주님 말씀대로 살게 도우소서.”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이 책으로 펴내고 매일 블로그에 올리고 있는 ‘주님의 마음으로 자연을 보는 말씀묵상’에 담긴 한 줄 기도문이다. 하루 한 번씩 함께 묵상하며 간절히 기도하면, 자연과 이웃에 대한 생각과 행동이 바뀌지 않을까. 묵상하며 날마다 하늘과 땅, 그사이에 사는 수많은 생명을 바라본다면, 따스한 봄날에 겨울눈이 피워낼 주님의 들꽃 향연에 온전히 참여할 수 있으리라.